한 사내가 길을 걷고 있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지역이다.
언덕을 넘어서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길이 나타난다.
좁은 길 위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부르기라도 하듯 그는 끌려간다.
길을 따라간다. 마음에 불안함은 없다.
길은 이리 저리 둘러간다. 아, 이 곳은 눈에도 새롭구나.
길은 단단한 것만도 아니며 곳곳에 깊은 웅덩이가 보인다.
늪지대인가?
눈 앞에 나타난 움푹패인 곳을 피하려는 순간 늪에 빠지고 말았다.
황급히 그리고 겨우 나온다. 몸이 젖자 정신이 깨어났다.
마음이 불안해 온다.
얼마가지 않아 그는 깨닫는다.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것을.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다친 상처가 통렬하다.
어두움이 대지에서 오르더니 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다친 몸과 황망한 가슴은 참기힘든 열을 몸속으로 채워넣고 있다.
사방은 처절하리 만큼 어두우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계곡의 숭어만이 가끔, 아주 가끔 물 위로 첨벙거릴뿐.
'마지막이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 때 멀리에서
바람이 분다.
바람은 구름을 흩어지게 하고 사내의 열을 식혀주었다.
바람속 향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형용하기 힘든 그윽한 향이다.
그러고보니 이 도시는 뚜르게네프 Turgenev가 밤을 보낸 러시아의 늪지대 Bezhin Lea와 같다.
그는 사냥을 하다 길을 잃었고 나는 그림자를 쫒아가다 길을 잃었다.
그는 길 위에서 다섯명의 낯선 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게는 세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타인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단절되었던 그 때 어디선가 하나의 손이 불쑥 나타났다.
나는 이 새로운 손을 '희망'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칠흙과 같은 어둠속에서 빛을 발하는 희망.
길은 잃는 것이 아니었다,
길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였을 뿐.
나는
이제 새
빛을 따라 새
로운 세상을 꿈꾼다.
11월 4일, 뉴욕늪지 中央에서.
Trackback 0 :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