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출간에 맞추어
2004년 어느 날부터 망치에 엊어 맞은 듯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이유도, 사명도 없었다.
어릴 적 사진조차 한 장 없는 나는 사실 反카메라人이었다.
그러나 가슴속을 파내고 열병을 앓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이 때까지 무엇을 보고 살았던가',
세느강변에 앉아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 눈을 뜨고 보니 어느 하나 이전처럼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이미지를 찾아 다닌 적이 없다.
그보다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하다.
언제, 어느 모퉁이에서, 그들은 모두 참을성을 갖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5월,
파리 생미셀에 위치한 Photo Service라는 아마추어 현상소를 기억한다.
처음 몇 롤의 필름을 찾고 놀랐다.
눈에 생소한 이들이 사진 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서려있었으나 아름다웠다.
그 후로 나는 사진에 전념하였다.
단 한대의 수동카메라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종이의 감촉처럼, 필름이 좋았다.
오후가 되어 집에서 현상을 할 때 필름의 물기를 손으로 쓸어 내리던 느낌을 기억한다.
말리기 위해 밤새 침대머리맡에 걸어 놓은 6~7롤의 필름 스트립들은
다음날 아침 창가에서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이른 아침, 파리의 빛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처럼,
그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타적이거나 박애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이므로. 그보다
나에게 남은,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사람 속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가장 더러운 부분까지.
진정한 자유란 결국 '자신' 속에서, 대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주 한국에서 뉴욕으로 여행하는 후배가 책을 가져온다 연락이 왔다.
2시간 지하철을 갈아타고 JFK 공항으로 향했다.
비바람이 치는 밤 9시, JFK 공항 청사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느껴보았다.
그 때 내가 바랬던 것은 하나,
내 손의 바로 이 느낌을, 독자들도 느끼기를 기도하였다.
새로운 길이다. 그리고,
길을 가보지 않은 자는 자유롭다.
2008년 3월 박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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